나 하나쯤이야

나도 쓰레기없이 살 수 있을까?

나 하나쯤이야

나도 쓰레기없이 살 수 있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짐이 많다. 누군가는 나를 맥시멀리스트라고 볼지도 모른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이전보다 훨씬 작은 집으로 이사를 왔고, 내 이삿짐에 가족들의 짐이 섞여 있는 이유도 있을 테지만, 나는 버리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많은 물건은 나를 안심시켜 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말이 안 되는 양의 이삿짐을 싣고 이 집으로 왔다. (사진 1,2) 이삿짐 센터에서 짐을 내려주는데 박스들이 천장까지 가득 찼다. 이사 첫날은 침대 위까지 짐이 가득 차서, 이사를 도와준 가족과 나는 현관문 앞에서 쪼그려 자야 했다.

사진 1.2

사진 3

정말 부끄럽지만, 이 사진에는 숨겨진 정보가 있다. 양쪽엔 벽면 높이의 책장이, 창문 앞에는 너비 140cm 정도의 커다란 책상이 두 개가 있었다. 짐 사이에 앉아 정리하다 이 상황이 기가 막혀서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었는데(사진3), 이때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수납을 잘하면 이 짐이 모두 소화될 거라고 믿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여기에 옷장이 추가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는 옷이 붙박이장과 행거에 걸려 있었기에 이 집에서는 옷장이 불가피하게 필요했다. 지금도 집이 터질 것 같은데 큰 가구가 더해진다니・・・. 중고로 산 옷장이 들어오면서 어쩔 수 없이 책장의 일부를 버렸다. 그리고 커다란 책상 두개 중 하나와 작별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오면서 품었던 나의 이상적인 그림은 수정이 아니라 폐기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사 전 꿈꿨던 이 방의 평면도(그림 4,5)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작은 방에 침대를 두었는데,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침대의 위치도 큰 방으로 옮기면서 모든 위치를 다시 바꿔야 했다. 그 뒤로도, 가구 하나 옮기려고 해도 딸린 짐이 많으니 매번 많은 짐을 옮겨야 했다. 마치 짐에 내가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며 필요한 것만 쏙 빼서 잠시 자취하는 게 아니라 1인 가구의 삶이 되니 이제 나의 짐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일단 내 집 안에 들어오는 모든 물건은 관리하거나 정리하거나 집 밖으로 나가기까지의 여정에서 반드시 나의 손을 거쳐야 한다. 사용하지 않고 오랫동안 나의 공간을 점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공간을 뺏어가는 것이고, 관리가 까다로워 자주 손을 봐줘야 한다면 나의 시간을 뺏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물건이 많아질수록 나의 공간과 시간은 자꾸 없어진다. 어느 순간 나는 나의 소유물에 내가 질식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산꼭대기로 올려도 다시 떨어지는 돌덩어리를 영원히 밀어 올리듯, 거대한 돌에 깔려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서 짐을 싹 정리해서 가벼워졌다는 행복한 결말로 가면 좋겠지만 나의 물건에 대한 집착은 만만치 않았다. 추리고 추려서 남길 것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추리고 추려 팔고 버릴 최소한의 것만 골라냈다. 이 과정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끝도 없이 빼앗아 갔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어떻게 하면 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넓은 집도 많은 돈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공간이 넓어진 만큼 관리해야 할 면적이 커지며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라도 관리를 해야 한다 해도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계속 커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신발을 100개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신고 나갈 수 있는 신발은 한 켤레고, 집에 의자가 20개가 있다고 한들 앉을 몸뚱이는 하나다. (손님이 오는 때도 있겠지만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내가 한켤레를 신고 나가는 동안 99켤레의 신발은 나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이렇게 과도한 소유는 내 삶을 속박하고 내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다. 이렇게 거대한 짐을 들고 이사하면서 과도하게 소유하는 것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였다.


덜 소유하는 것이 비단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독창적인 방식으로 실험한 사람이 있다. 캘리포니아 밀 벨리에 사는 비 존슨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아메리칸 드림의 삶을 살았다. 차가 세 대나 들어가는 차고와 연못이 딸린 80평이 넘는 현대적인 집에서 살던 그녀는 재활용을 하기 때문에 자신은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 믿었다.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을 즐기며 살다가 문득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사는 밀 벨리로 이사하면서 집의 크기를 반 이상 줄이고, 물건의 80퍼센트를 처분했다. 그녀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쓰레기를 없애는 다섯 가지 단계별 원칙을 세웠다.

사진 출처 : 『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비 존슨

다섯 단계는 다음과 같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거절하고, (필요한 것은) 줄이고, (소비한 것은) 재사용하고, (거절하거나 줄이거나 재사용할 수 없는 것을) 재활용하고, 그리고 나머지는 썩힌다(퇴비화). 우리가 보통 마음의 위안으로 삼고 있는 재활용은 가장 마지막의 매립(퇴비화) 전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나올 뿐이다. 그녀는 이 다섯가지 단계를 차례대로 실행하면 자연스럽게 아주 약간의 쓰레기만 배출된다고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단계 모두 매우 인상적이지만 가장 새로운 것은 첫 번째 단계인 ‘거절하기’이다. 소비는 온전히 나의 자발적인 쇼핑을 통해서만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지금 당장 집 안을 둘러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산 것보다 친구에게 혹은 공짜로 받아온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게 주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공짜라면 응당 가져가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친구들에게 내 집에 쓰레기를 들이지 않도록 부탁하고 필요 없는 공짜를 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입맛에 맞지 않는 간식 선물이나 취향이 아닌 장식물, 공짜라서 생각 없이 받아온 그립톡과 화장품을 사면서 같이 온 증정용 화장품, 무심코 집어온 리플렛과 안내 책자 등….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버리지도 팔지도 쓰지도 못하게 애매하게 남아있는 녀석들이다. 마음이라도 묻어있지 않으면 그나마 간편한데, 물건을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생각이 참 복잡해진다.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첫 단계이지만 소유물이 줄어들면 효율성과 시간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필요한 것이라면) 소비하는 양을 줄인다. 저자는 집 크기를 줄이면서 더 환경이 좋은 동네로 가게 되었고, 생활을 간소화하니 살림이 편해지고 게다가 짐이 적으니 집을 단기간 월세를 주면서 부수입을 얻기도 했다고 말한다. 세 번째 단계는 (소비한 것을) 재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고쳐 쓰기’라는 동사가 실종이 된 것처럼 수리해서 쓰기보다는 새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더 크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새 물건을 사기보다는 주변에서 빌려 쓰거나 빌려주기, 중고품을 팔거나 구매하는 것이 이 단계에 포함된다. 또한, 일회용품을 대신 할 수 있는 재사용하거나 리필해서 쓸 수 있는 대체품을 찾는 것 또한 이 단계에서 중요하다.


네 번째 단계는 우리가 가장 오해하고 있던 ‘재활용하기’이다. 앞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거절하고, 필요한 것은 줄이고, 소비한 것은 재활용하고 나면 재활용할 것이 얼마 남지 않는다. 물건을 구매할 때는 상품의 전체 사용 수명과 재활용 가능성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플라스틱은 생산하고 소비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가스와 화학물질 등의 독성이 배출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재활용되는 종류도 그 과정에서 급이 떨어져 재활용 불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지고 결국 매립지 행이 되고 만다. 따라서 새것을 살 때 재사용을 고려하며 최종 재활용 소재 비중이 높으며 계속 재활용될 가능성이 큰 상품과 소재(철·알루미늄·유리·종이 등)를 골라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매립(퇴비화)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가정에 퇴비 함을 만들어 유기체 폐기물을 넣어 퇴비화 시키는 단계이다. 이게 어려운 사람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매립지로 보낸다. 유기체 폐기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해되어 그 영양분을 흙으로 돌려놓게 된다. 작가는 퇴비화하기에 적절한 환경조건을 만들어 매립지로 갈 쓰레기를 줄였는데, 가정쓰레기의 1/3이 유기체임을 고려하면 퇴비화는 쓰레기 줄이기에 지극히 합당한 방법이라고 한다. 작가는 퇴비 함을 징그럽고 냄새나며 지저분하고 복잡하다 여겼는데 그런 선입견은 맞지 않았다며, 퇴비함 만드는 방법을 쉽게 설명해 주는데 따라 할 엄두는 잘 나지 않는다.

이러한 다섯단계를 적용하여 비 존슨의 네 가족은 1년간 유리병 하나에 들어가는 쓰레기만 배출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비 존슨

비 존슨이 쓴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에서는 이 다섯 단계를 부엌에서, 욕실과 화장대에서, 침실과 옷장에서, 살림과 일터에서, 학교에서, 인간관계에서까지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책에서 흥미롭고 재미있던 부분 몇 가지를 공유해본다.


1. 부엌에서 파레토 법칙을 적용한다.

부엌에서도 80퍼센트의 결과가 20퍼센트의 원인에서 발생된다는 ‘파레토 법칙’을 적용했다. 20퍼센트의 주방 도구가 80퍼센트의 시간 동안 사용되고, 나머지 80퍼센트는 별로 쓸모가 없다. 요리를 쉽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기구를 하나씩 들여다보면 소중한 공간을 차지하고 막상 필요한것을 찾기 어렵게 하며 스트레스를 유발시키고 어수선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보조기구가 적을수록 음식 준비에 드는 시간이 적게 걸린다.


2. 담을 용기를 직접 가져가는 것은 머뭇거리지 않는다.

“한치 몸통 네 개요. 여기다 넣어주세요” 담담하게 한치를 내려다보며 유리병을 건넨다. 나는 마치 병에 담아가는 것이 흔한 일인 양 (마치 내 평생 동안 이런 식으로 장을 봐온 것처럼) 행동하고, 병을 쓰는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쓰레기통을 두지 않고 살거든요”라고 대답한다. 아무도 더 꼬치꼬치 묻지 않는다.


3. 욕실과 화장품의 쓰레기 제로

욕실 구성을 간소화 할 뿐 아니라 로션에 대한 대체품으로 요리용 오일 선택한다. 중성피부면 카놀라유나 콩기름, 건성피부면 올리브·피넛·해바라기씨유·홍화유·참기름·콩기름, 지성피부는 포도씨유를 사용한다. 드라이 샴푸대신 녹말가루를 사용하고. 설탕으로 왁싱제를 직접 만들고, 블러셔를 코코아+시나몬+비트 가루를 섞어 만든다. 저자는 심지어 마스카라, 아이라이너, 헤어스프레이, 다용도 밤 등을 직접 만들어 쓰는데, 책에 자세한 레시피가 있다. 


4. 휴지 대신에 티셔츠로 휴지 만들기

휴지대신에 오래된 티셔츠를 15x15cm 크기로 잘라서 쉽게 뽑아서 쓸 수 있도록 병 안에 넣어둔다.


5. 화분에 설치하는 크리스마스 장식

크리스마스 트리는 180센티미터 관목에 설치한다. 또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물건보다 체험으로 선물한다. 체험 선물은 환경에 더 친화적이고, 기억은 더 오래갈 가능성이 높다.

물건을 치우고 달라진 모습(사진 6,7) 사진1,2,3과 같은 방이다.

솔직히 말하면 물건을 버리는 일은 마치 나의 살점을 떼어내는 것만큼 고통스럽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짐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정리를 하다보니 짐이 적어진다는 것은 단지 그 물건 하나가 아니라 그 물건 뒤에 딸려있는 보관, 관리, 청소, 정리, 처리까지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비 존슨은 물품 처분을 꺼리지 말라며 덜 소유하는 삶에서 얻게 되는 이득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처분하고 후회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작은 희생이다.


저자 비 존슨은 쓰레기를 덜 발생시키려는 노력이 시간을 잡아먹고 돈 드는 일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예상과 다르다고 스스로 증명한다. 가진 게 적으면 치우고 정리할 것도 적어져서 시간이 절약되고, 덜 가지려고 하니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유해 물질을 가까이하지 않으니 건강이 좋아지고, 이렇게 늘어난 시간과 좋아진 건강한 몸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산다. 무엇보다 소유가 우리를 근원으로부터, 야외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가 말하는 쓰레기를 덜 만드는 삶의 방식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환경 측면에서도 이득이고, 개인적인 생활 측면에서도 이득이어서 따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특히 첫 번째 단계에 ‘거절하기’ 단계를 적용해보면서 내 집에 물건을 들이는 것에 매우 신중해졌다.


‘거절하기’ 단계에서 결정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나의 욕망’이다. 사고 싶고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온전한 나의 욕망일 가능성보다는 온갖 마케팅과 SNS와 사회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남의 욕망, 혹은 만들어진 욕망일 가능성이 크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가짜 욕망으로만 평생을 살다가 갈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만 추려지기 때문에 내 삶에서 중요한 핵심 가치를 알게 되는 것 또한 큰 이점이다. 자주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것들이 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문지기가 되어보자. 이 과정에서 가볍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핵심적인 ‘진짜 욕망’만 남겨둘 수 있도록 감별하는 욕망 문지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참고한 책> 

『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 비 존슨 | 청림라이프 | 2019

고백하자면 나는 짐이 많다. 누군가는 나를 맥시멀리스트라고 볼지도 모른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이전보다 훨씬 작은 집으로 이사를 왔고, 내 이삿짐에 가족들의 짐이 섞여 있는 이유도 있을 테지만, 나는 버리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많은 물건은 나를 안심시켜 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말이 안 되는 양의 이삿짐을 싣고 이 집으로 왔다. (사진 1,2) 이삿짐 센터에서 짐을 내려주는데 박스들이 천장까지 가득 찼다. 이사 첫날은 침대 위까지 짐이 가득 차서, 이사를 도와준 가족과 나는 현관문 앞에서 쪼그려 자야 했다.

사진3

정말 부끄럽지만, 이 사진에는 숨겨진 정보가 있다. 양쪽엔 벽면 높이의 책장이, 창문 앞에는 너비 140cm 정도의 커다란 책상이 두 개가 있었다. 짐 사이에 앉아 정리하다 이 상황이 기가 막혀서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었는데(사진3), 이때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수납을 잘하면 이 짐이 모두 소화될 거라고 믿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여기에 옷장이 추가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는 옷이 붙박이장과 행거에 걸려 있었기에 이 집에서는 옷장이 불가피하게 필요했다. 지금도 집이 터질 것 같은데 큰 가구가 더해진다니⋯. 중고로 산 옷장이 들어오면서 어쩔 수 없이 책장의 일부를 버렸다. 그리고 커다란 책상 두개 중 하나와 작별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오면서 품었던 나의 이상적인 그림은 수정이 아니라 폐기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작은 방에 침대를 두었는데,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침대의 위치도 큰 방으로 옮기면서 모든 위치를 다시 바꿔야 했다. 그 뒤로도, 가구 하나 옮기려고 해도 딸린 짐이 많으니 매번 많은 짐을 옮겨야 했다. 마치 짐에 내가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며 필요한 것만 쏙 빼서 잠시 자취하는 게 아니라 1인 가구의 삶이 되니 이제 나의 짐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일단 내 집 안에 들어오는 모든 물건은 관리하거나 정리하거나 집 밖으로 나가기까지의 여정에서 반드시 나의 손을 거쳐야 한다. 사용하지 않고 오랫동안 나의 공간을 점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공간을 뺏어가는 것이고, 관리가 까다로워 자주 손을 봐줘야 한다면 나의 시간을 뺏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물건이 많아질수록 나의 공간과 시간은 자꾸 없어진다. 어느 순간 나는 나의 소유물에 내가 질식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산꼭대기로 올려도 다시 떨어지는 돌덩어리를 영원히 밀어 올리듯, 거대한 돌에 깔려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서 짐을 싹 정리해서 가벼워졌다는 행복한 결말로 가면 좋겠지만 나의 물건에 대한 집착은 만만치 않았다. 추리고 추려서 남길 것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추리고 추려 팔고 버릴 최소한의 것만 골라냈다. 이 과정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끝도 없이 빼앗아 갔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어떻게 하면 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넓은 집도 많은 돈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공간이 넓어진 만큼 관리해야 할 면적이 커지며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라도 관리를 해야 한다 해도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계속 커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신발을 100개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신고 나갈 수 있는 신발은 한 켤레고, 집에 의자가 20개가 있다고 한들 앉을 몸뚱이는 하나다. (손님이 오는 때도 있겠지만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내가 한켤레를 신고 나가는 동안 99켤레의 신발은 나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이렇게 과도한 소유는 내 삶을 속박하고 내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다. 이렇게 거대한 짐을 들고 이사하면서 과도하게 소유하는 것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였다.


덜 소유하는 것이 비단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독창적인 방식으로 실험한 사람이 있다. 캘리포니아 밀 벨리에 사는 비 존슨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아메리칸 드림의 삶을 살았다. 차가 세 대나 들어가는 차고와 연못이 딸린 80평이 넘는 현대적인 집에서 살던 그녀는 재활용을 하기 때문에 자신은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 믿었다.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을 즐기며 살다가 문득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사는 밀 벨리로 이사하면서 집의 크기를 반 이상 줄이고, 물건의 80퍼센트를 처분했다. 그녀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쓰레기를 없애는 다섯 가지 단계별 원칙을 세웠다.

출처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비 존슨

다섯 단계는 다음과 같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거절하고, (필요한 것은) 줄이고, (소비한 것은) 재사용하고, (거절하거나 줄이거나 재사용할 수 없는 것을) 재활용하고, 그리고 나머지는 썩힌다(퇴비화). 우리가 보통 마음의 위안으로 삼고 있는 재활용은 가장 마지막의 매립(퇴비화) 전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나올 뿐이다. 그녀는 이 다섯가지 단계를 차례대로 실행하면 자연스럽게 아주 약간의 쓰레기만 배출된다고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단계 모두 매우 인상적이지만 가장 새로운 것은 첫 번째 단계인 ‘거절하기’이다. 소비는 온전히 나의 자발적인 쇼핑을 통해서만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지금 당장 집 안을 둘러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산 것보다 친구에게 혹은 공짜로 받아온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게 주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공짜라면 응당 가져가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친구들에게 내 집에 쓰레기를 들이지 않도록 부탁하고 필요 없는 공짜를 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입맛에 맞지 않는 간식 선물이나 취향이 아닌 장식물, 공짜라서 생각 없이 받아온 그립톡과 화장품을 사면서 같이 온 증정용 화장품, 무심코 집어온 리플렛과 안내 책자 등….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버리지도 팔지도 쓰지도 못하게 애매하게 남아있는 녀석들이다. 마음이라도 묻어있지 않으면 그나마 간편한데, 물건을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생각이 참 복잡해진다.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첫 단계이지만 소유물이 줄어들면 효율성과 시간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필요한 것이라면) 소비하는 양을 줄인다. 저자는 집 크기를 줄이면서 더 환경이 좋은 동네로 가게 되었고, 생활을 간소화하니 살림이 편해지고 게다가 짐이 적으니 집을 단기간 월세를 주면서 부수입을 얻기도 했다고 말한다. 세 번째 단계는 (소비한 것을) 재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고쳐 쓰기’라는 동사가 실종이 된 것처럼 수리해서 쓰기보다는 새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더 크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새 물건을 사기보다는 주변에서 빌려 쓰거나 빌려주기, 중고품을 팔거나 구매하는 것이 이 단계에 포함된다. 또한, 일회용품을 대신 할 수 있는 재사용하거나 리필해서 쓸 수 있는 대체품을 찾는 것 또한 이 단계에서 중요하다.


네 번째 단계는 우리가 가장 오해하고 있던 ‘재활용하기’이다. 앞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거절하고, 필요한 것은 줄이고, 소비한 것은 재활용하고 나면 재활용할 것이 얼마 남지 않는다. 물건을 구매할 때는 상품의 전체 사용 수명과 재활용 가능성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플라스틱은 생산하고 소비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가스와 화학물질 등의 독성이 배출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재활용되는 종류도 그 과정에서 급이 떨어져 재활용 불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지고 결국 매립지 행이 되고 만다. 따라서 새것을 살 때 재사용을 고려하며 최종 재활용 소재 비중이 높으며 계속 재활용될 가능성이 큰 상품과 소재(철·알루미늄·유리·종이 등)를 골라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매립(퇴비화)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가정에 퇴비 함을 만들어 유기체 폐기물을 넣어 퇴비화 시키는 단계이다. 이게 어려운 사람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매립지로 보낸다. 유기체 폐기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해되어 그 영양분을 흙으로 돌려놓게 된다. 작가는 퇴비화하기에 적절한 환경조건을 만들어 매립지로 갈 쓰레기를 줄였는데, 가정쓰레기의 1/3이 유기체임을 고려하면 퇴비화는 쓰레기 줄이기에 지극히 합당한 방법이라고 한다. 작가는 퇴비 함을 징그럽고 냄새나며 지저분하고 복잡하다 여겼는데 그런 선입견은 맞지 않았다며, 퇴비함 만드는 방법을 쉽게 설명해 주는데 따라 할 엄두는 잘 나지 않는다.

이러한 다섯단계를 적용하여 비 존슨의 네 가족은 1년간 유리병 하나에 들어가는 쓰레기만 배출할 수 있었다.

 출처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비 존슨

비 존슨이 쓴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에서는 이 다섯 단계를 부엌에서, 욕실과 화장대에서, 침실과 옷장에서, 살림과 일터에서, 학교에서, 인간관계에서까지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책에서 흥미롭고 재미있던 부분 몇 가지를 공유해본다.

1. 부엌에서 파레토 법칙을 적용한다.

부엌에서도 80퍼센트의 결과가 20퍼센트의 원인에서 발생된다는 ‘파레토 법칙’을 적용했다. 20퍼센트의 주방 도구가 80퍼센트의 시간 동안 사용되고, 나머지 80퍼센트는 별로 쓸모가 없다. 요리를 쉽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기구를 하나씩 들여다보면 소중한 공간을 차지하고 막상 필요한것을 찾기 어렵게 하며 스트레스를 유발시키고 어수선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보조기구가 적을수록 음식 준비에 드는 시간이 적게 걸린다.


2. 담을 용기를 직접 가져가는 것은 머뭇거리지 않는다.

“한치 몸통 네 개요. 여기다 넣어주세요” 담담하게 한치를 내려다보며 유리병을 건넨다. 나는 마치 병에 담아가는 것이 흔한 일인 양 (마치 내 평생 동안 이런 식으로 장을 봐온 것처럼) 행동하고, 병을 쓰는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쓰레기통을 두지 않고 살거든요”라고 대답한다. 아무도 더 꼬치꼬치 묻지 않는다.


3. 욕실과 화장품의 쓰레기 제로

욕실 구성을 간소화 할 뿐 아니라 로션에 대한 대체품으로 요리용 오일 선택한다. 중성피부면 카놀라유나 콩기름, 건성피부면 올리브·피넛·해바라기씨유·홍화유·참기름·콩기름, 지성피부는 포도씨유를 사용한다. 드라이 샴푸대신 녹말가루를 사용하고. 설탕으로 왁싱제를 직접 만들고, 블러셔를 코코아+시나몬+비트 가루를 섞어 만든다. 저자는 심지어 마스카라, 아이라이너, 헤어스프레이, 다용도 밤 등을 직접 만들어 쓰는데, 책에 자세한 레시피가 있다. 


4. 휴지 대신에 티셔츠로 휴지 만들기

휴지대신에 오래된 티셔츠를 15x15cm 크기로 잘라서 쉽게 뽑아서 쓸 수 있도록 병 안에 넣어둔다.


5. 화분에 설치하는 크리스마스 장식

크리스마스 트리는 180센티미터 관목에 설치한다. 또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물건보다 체험으로 선물한다. 체험 선물은 환경에 더 친화적이고, 기억은 더 오래갈 가능성이 높다.

물건을 치우고 달라진 모습(사진 6,7) 사진1,2,3과 같은 방이다.

솔직히 말하면 물건을 버리는 일은 마치 나의 살점을 떼어내는 것만큼 고통스럽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짐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정리를 하다보니 짐이 적어진다는 것은 단지 그 물건 하나가 아니라 그 물건 뒤에 딸려있는 보관, 관리, 청소, 정리, 처리까지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비 존슨은 물품 처분을 꺼리지 말라며 덜 소유하는 삶에서 얻게 되는 이득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처분하고 후회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작은 희생이다.


저자 비 존슨은 쓰레기를 덜 발생시키려는 노력이 시간을 잡아먹고 돈 드는 일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예상과 다르다고 스스로 증명한다. 가진 게 적으면 치우고 정리할 것도 적어져서 시간이 절약되고, 덜 가지려고 하니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유해 물질을 가까이하지 않으니 건강이 좋아지고, 이렇게 늘어난 시간과 좋아진 건강한 몸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산다. 무엇보다 소유가 우리를 근원으로부터, 야외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가 말하는 쓰레기를 덜 만드는 삶의 방식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환경 측면에서도 이득이고, 개인적인 생활 측면에서도 이득이어서 따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특히 첫 번째 단계에 ‘거절하기’ 단계를 적용해보면서 내 집에 물건을 들이는 것에 매우 신중해졌다.


‘거절하기’ 단계에서 결정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나의 욕망’이다. 사고 싶고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온전한 나의 욕망일 가능성보다는 온갖 마케팅과 SNS와 사회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남의 욕망, 혹은 만들어진 욕망일 가능성이 크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가짜 욕망으로만 평생을 살다가 갈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만 추려지기 때문에 내 삶에서 중요한 핵심 가치를 알게 되는 것 또한 큰 이점이다. 자주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것들이 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문지기가 되어보자. 이 과정에서 가볍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핵심적인 ‘진짜 욕망’만 남겨둘 수 있도록 감별하는 욕망 문지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참고한 책> 

『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 비 존슨 | 청림라이프 | 2019